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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임의 시조 읽기 10】조경선의 "자릿값"
문학/출판/인문
[ 강영임의 시조 읽기]

【강영임의 시조 읽기 10】조경선의 "자릿값"

시인 강영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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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릿값 / 조경선 사진: 강영임 기자
자릿값 / 조경선 [사진: 강영임 기자]

자릿값

 

조경선

 

발밑은 개미들로

머리는 새똥으로

 

나무 밑의 임자들이 진을 치고 머물 때

 

그 옆을 서성이다가

수심(樹心)이 깊어진다

 

나무도 내가 심고

의자도 만들었는데

 

나무 밑에 앉지 마라 그늘 값을 내라 한다

 

자리를 옮길 때마다

더위 값을 치른다

 

『어때요 이런 고요』   (2024. 여우난골)

 


계절을 앞질러가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벚꽃 핀지 엊그제 같은데 땅 위는 하얀 꽃비로 덮인다. 이제 곧 하루가 다르게 어린 연두에서 생명의 절정인 청록색 여름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릴 것이다.

 

조경선 시인의 「자릿값」을 읽으면서 어느새 여름 한낮에 서 있는 시인을 만난다. 나무도 심고 의자도 만들었는데 엉뚱한 이들이 그늘 값을 내라 한다. 발밑의 개미들과 새똥을 피해 그늘 찾아 옮겨 다니는 시인을 상상해보라. 절로 웃음이 나온다. 정작 그늘을 만들어준 나무는 의연하게 서 있는데 말이다.

 

시인은 그늘 값, 더위 값, 자릿값이라 말하지만 그것은 언어의 확장, 사회의 확장성을 가져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도 값을 지불해야 하고, 국회의원들도 국민의 대표로 맡은 바를 잘 수행해야 할 의무가 그들의 자릿값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자릿값이 있을 것이다. 부모에게 자식은 존중하고 섬겨야 할 작은 신()이고, 자식에게 부모는 본보기를 보여줘야 할 세상이고 우주다.

 

곧 더위가 시작된다. 나무 그늘 찾아 종종거리며 걷고 있을 지친 이들에게, 정신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마음의 갈래를 지불해야 하는 누군가에게, 시원한 그늘이 돼주는 하루면 어떨까.

 

강영임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강영임시인
강영임시인
서귀포 강정에서 태어나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편집자주: "강영임의 시조 읽기" 코너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
시인 강영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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