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규 칼럼] "자비출판 70% 시대, 출판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최근 출판계를 관찰하는 이들 사이에서 다소 씁쓸한 진단이 공유되고 있다. 이제 출판사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동종업계가 아니라 저자 자신이다. 이 말은 단순한 자조가 아니라, 현재 출판 산업이 겪고 있는 구조적 변화의 핵심을 정확히 포착한다.

2025년 출판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이 있었다. 연예기획사가 소속 아티스트의 책을 직접 기획·제작해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고, 구독자 50만을 보유한 유튜버가 1인 출판사를 설립해 첫 책으로 10만 부 이상을 판매했다. 출판 이력이 전무한 신생 출판사가 단 한 권의 책으로 주요 서점의 1위를 차지하는 일도 더 이상 예외적 사건이 아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유통 채널이 다변화되었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출판의 권력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신호다. 20세기 내내 출판사는 '게이트키퍼'로서 저자를 선별하고 책의 운명을 결정했다. 그러나 21세기의 플랫폼 경제는 이 관계를 역전시켰다. 이제 저자가 출판사를 선택하거나, 아예 출판사라는 중간 단계를 생략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산업 모델의 붕괴와 1무 9패의 시대

출판은 오랫동안 확률의 산업으로 작동해왔다. 업계에서는 이를 1승 9패의 법칙 이라 불렀다. 열 권의 책 중 한 권만 성공해도 나머지 아홉 권의 손실을 충분히 메울 수 있었고, 이것이 출판사의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그러나 이 공식은 2010년대 중반 이후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2023년 대한출판문화협회 통계에 따르면, 신간 도서의 평균 발행 부수는 약 1,200부로 집계되었다. 10년 전인 2013년의 2,500부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더 심각한 것은 실제 판매 부수다. 초판 1,000부를 찍어도 300~500부 판매에 그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며, 심지어 100부 미만 판매로 끝나는 책도 적지 않다.
현재의 출판 구조는 '1승 9패'가 아니라 '1무 9패'에 가깝다. 열 권 중 한 권이 간신히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고, 나머지는 모두 적자를 기록한다. 이런 상황에서 출판사의 수익 모델은 사실상 붕괴 직전이다. 편집, 디자인, 마케팅, 유통에 투입되는 고정비용은 그대로인데 판매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곤혹스러운 상황은 어렵게 발굴하고 육성한 베스트셀러 저자가 다음 책에서 계약을 해지하고 독립 출판이나 자가 출판으로 전향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 입장에서는 합리적 선택이다. 이미 구축된 팬덤이 있고, SNS를 통한 직접 소통 채널이 있으며, 온라인 서점을 통한 유통이 가능하다면 굳이 인세율 10~15%에 만족할 이유가 없다.
출판사는 이를 '배신'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이는 개인의 도덕성 문제라기보다 산업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가 낳은 필연적 결과에 가깝다. 저자가 출판사를 떠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출판사가 저자에게 더 이상 충분한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본질적 문제다.
자비출판의 양면성과 착취 구조
이러한 출판 산업의 위기 속에서 자비출판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존재하지 않으나, 국립중앙도서관 납본 자료와 ISBN 발급 현황을 교차 분석한 일부 연구자들은 2023년 기준 전체 출간 도서의 50~60%가 자비출판 형태일 것으로 추정한다. 일부 장르, 특히 자기계발서와 에세이 분야에서는 이 비율이 70%를 상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자비출판의 확산 자체는 중립적 현상이다. POD(주문형 인쇄) 기술의 발달, 온라인 플랫폼의 다양화, 1인 출판의 제도적 용이성 등은 출판의 민주화를 가져왔다. 과거에는 출판사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책을 낼 수 없었지만, 이제는 누구나 자신의 글을 책의 형태로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 이는 표현의 자유와 창작의 권리라는 측면에서 분명히 긍정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자비출판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착취적 구조이다. 현재 출판 시장에는 초보 저자의 출판 욕구를 수익화하는 사업 모델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과도한 제작비 요구다. 일반적인 300페이지 분량의 단행본 제작 원가는 편집·디자인·인쇄를 포함해 300~400만 원 수준이다. 그러나 일부 자비출판 업체는 같은 작업에 800만 원에서 2,000만 원까지 청구한다. 저자가 출판 과정을 모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둘째, 불투명한 마케팅 비용이다. "베스트셀러 만들기 패키지"라는 이름으로 500만~1,000만 원을 추가 청구하면서도 구체적인 마케팅 집행 내역은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는 서점 진열대 배치나 온라인 광고에 소액만 집행하고 나머지는 업체의 수익으로 귀속된다.
셋째, 일방적인 계약 조건이다. "3,000부 판매 이후부터 인세 지급" 같은 조항은 사실상 인세를 지급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자비출판 도서가 3,000부를 판매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또한 저작권과 2차 판권을 출판사가 소유하는 계약도 여전히 발견된다.
이러한 계약에 서명하는 저자 대부분은 책 출간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로 충만해 있다. 자기계발 강사가 되거나, 기업 강연을 다니거나, 미디어에 출연하는 '저자'라는 지위를 꿈꾼다. 그러나 현실은 빚과 좌절, 그리고 팔리지 않는 책 수백 권이 쌓인 창고로 귀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단순히 상업적 문제가 아니다. 출판의 꿈을 이용해 저자의 열망을 착취하는 구조는 산업 전체의 신뢰를 갉아먹고, 궁극적으로 출판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해친다.
편집자의 존재와 가치
이 모든 변화 속에서 가장 조용히, 그러나 가장 깊이 타격받고 있는 존재가 바로 편집자다. AI가 글을 쓰고, 자동 교정 프로그램이 문장을 다듬으며, 템플릿이 디자인을 결정하는 시대에 편집자의 역할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그러나 출판 현장에서 오래 일한 이들은 잘 알고 있다. 어떤 편집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책의 생명력은 완전히 달라진다. 편집자는 단순히 맞춤법을 교정하고 문장을 다듬는 사람이 아니다. . 그들은 원고의 구조를 재구성하고, 저자의 의도를 명확히 하며, 독자의 이해를 돕는 다리를 놓는 사람이다.
특히 에세이, 인문서, 소설처럼 서사와 사유가 중요한 장르에서 편집자의 개입은 결정적이다. 초보 저자의 날것 그대로의 원고는 대부분 구조가 산만하고, 문장이 중언부언하며, 독자를 배려하지 못한다. 이를 읽을 수 있는 텍스트로 만드는 것이 편집자의 역할이다.
그러나 이 노동은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다. 몇 시간 회의했고, 몇 차례 수정했으며,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를 제안했는지는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다. 플랫폼 경제와 자동화 시대에 이런 보이지 않는 노동은 과소평가되기 쉽다.
그 결과, 숙련된 편집자들은 출판계를 떠나고 있다. 남아 있는 편집자들은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린다. 한 사람이 연간 20~30권을 담당하며 한 권당 깊이 있는 편집을 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편집의 질이 하락하고, 이는 다시 출판물의 전반적 수준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맥락과 감정, 문화적 뉘앙스를 읽어내고 편집적으로 재구성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 편집자의 고유한 영역이다. 편집자 없는 출판은 기술적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그것은 영혼 없는 책을 양산할 위험이 크다.
AI 시대, 출판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존엄
요즘 출판계에서는 독자는 사라지고 저자만 늘어난다는 자조적 진단이 자주 들린다. 실제로 출판사마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투고 메일이 도착한다. 블로그 글을 모은 에세이, 육아 일기, 자기계발 경험담, 시집 등 장르도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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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든 진실한 글이 반드시 책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글쓰기는 그 자체로 치유이고 성찰이며 기록이다. 어떤 글은 쓰는 행위 자체로 이미 충분한 의미를 달성한다. 삶을 견디게 했고, 자신을 이해하게 했으며, 한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면 그 글은 이미 제 역할을 다한 것이다.
책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다. 대중성, 시장성, 출판 가능성은 글의 진정성과는 별개의 차원이다. 진정성 있는 글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책이 되는 것은 아니며, 책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글의 가치가 폄하되는 것도 아니다.
AI 시대는 글쓰기의 문턱을 극적으로 낮췄다. 챗GPT 같은 생성형 AI를 활용하면 누구나 하루 만에 200페이지 분량의 텍스트를 생성할 수 있다. 그러나 '문장 생산'과 '의미 창출'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출판은 여전히 다음 네 가지 가치 위에 서야 한다.
첫째, 기획의 윤리다. 출판사는 단기적 이윤보다 사회적 담론의 질을 우선해야 한다. 무엇을 출판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여전히 출판의 핵심적 책무다. 시장의 욕구와 사회의 필요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기획자의 역할이다.
둘째, 편집의 책임이다. 형태보다 의미, 완성도보다 진정성을 추구해야 한다. 편집자는 저자의 목소리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더 선명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이 과정에서의 섬세함과 인내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노동이다.
셋째, 계약의 공정성이다. 저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투명한 수익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자비출판 계약에서 저자에게 불리한 조건을 강요하거나, 불투명한 비용을 청구하는 관행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업계 차원의 표준 계약서 마련과 가이드라인 제정이 시급하다.
넷째, 독자에 대한 존중이다. 독자를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사고의 동반자로 대해야 한다. 클릭베이트식 제목, 과장된 카피, 내용 없는 책으로 독자를 현혹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판매를 늘릴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출판 전체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

출간 도서의 70%가 자비출판이 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어쩌면 이미 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곧 출판의 미래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출판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에 있기 때문이다.
저자를 수익원이 아니라 창작의 동반자로 대하는 태도, 글을 상품이 아니라 한 인간의 삶과 사유의 기록으로 존중하는 태도, 그리고 한 권의 책이 독자에게 도달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 말이다.
이 태도가 남아 있는 한, 출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겉으로는 조용히 위축되는 듯 보일지라도, 여전히 누군가는 한 문장의 무게를 고민하고, 한 권의 책을 빚어내며, 다음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바로 출판의 존엄이고, AI 시대에도 반드시 지켜져야 할 인간 노동의 마지막 보루다. 책은 단순히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한 인간의 목소리가 다른 인간에게 닿는 가장 오래되고도 여전히 유효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35여 년간 교육과 기업 경영, 그리고 지역 사회 발전의 현장에서 사람과 함께 성장해왔다. “삶의 문제는 결국 사람의 문제”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교육을 통해 변화를 만들고, 기업을 통해 길을 열었으며, 현재는 사회 곳곳의 다양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며 더 따뜻하고 공정한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