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고명자의 "쌔그랍다는 말"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48]
쌔그랍다는 말
고명자
야야, 니는 무슨 짓을 해도 이쁜 거 니는 아나
짱배기에 까마구가 집을 짓드락 디비 자고
눈티 밤티 되드락 울어싸도 이쁘다
야야, 이거 다래라 카는 긴데 함 무 바라
억수로 귀한 기라
쌔그랍다꼬?
가스나, 요래 이쁜 말 안즉 쓰고 노는가베
오야 오야 그래, 쫌 쌔그랍제 몸서리쳐 감서 무 보래이
쌔가 깨춤을 추제? 그기 참맛인 기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고려가요 청산별곡 니 국어 시간에 배았다 아이가
거서 나오는 그 다래인 기라
과실 한 쪼가리도 역사가 있다 아이가
딸아, 니는 지금 조상님들의 한가운데를 사뿐히 걸어가는 기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 살어리랏다
산에 드가가 나무 열매 따 묵고 청청淸淸하게 살자
껄뱅이라 웃어싸도 멋지다 아이가
그거 아나, 너거 아빠도 그래 살고 싶어 했다
추저분 세상에 발 담그지 말고 쪼매만 묵고 살자
그 맴을 이자 알아 무신 소용이고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한 나도 자고 니러 우리노라
가을빛에 몰캉몰캉 잘 익었데이
니맹키로 예쁜 새댁이가 무슨 짚은 뜻이 있었는가
얄리 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강원도 청정 산꼴짝에 드가 키웠다 카드라
요즘 너거들이야 지 살고 잡은 대로 산다 아이가
얼매나 좋은 세상이고
바바라 야야 니도 퍼뜩 시집가 다래 같은 알라 좀 낳아도
―『나무 되기 연습』(걷는사람, 2023)

[해설]
사투리의 맛깔스러움
서울 출생 시인이 이렇게 진한 경상북도 사투리를 구사할 줄 알다니, 신기하다. 주변에 경상도 사람이 있나 보다. 시거나 시큼하다를 쌔그랍다로 표현하는 경상도 사투리의 특성은 경음과 격음이 많다는 것이다. 와이카노, 니 자꾸 그케쌀래? 쎄가 빠지게 고생해도 알아주는 사람 하낫또 없고. 마 다 때리치아뿌라.
이 시의 화자는 남자다. 가스나가 예뻐서 미치겠단다. 이래도 예쁘고 저래도 예쁘니 눈에 완전히 콩깍지가 씌었다. 남자가 가스나한테 고려가요 청산별곡에도 나오는, 역사가 있는 과일인 다래를 자꾸 먹어보라고 권한다.
남자가 가스나를 자꾸 유혹하는데, “너거 아빠도 그래 살고 싶어 했다/추저분 세상에 발 담그지 말고 쪼매만 묵고 살자”에 이르니 무슨 사연이 있는 모양인데 확실히 설명되지는 않고 있다. 요컨대 속세를 떠나 함께 산에 들어가 귀거래사를 부르자는 것이다. 백석의 말을 빌리자면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오막살이)에 살자는 것이다.
끝에 하는 말이 영 의뭉스럽다. 다래 같은 알라 좀 낳아달라고 한다. 내 아를 낳아 달라는 말이면 청혼인데 청혼을 하면서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니맹키로 예쁜 새댁’이면 남의 새댁인데 그녀가 애를 낳건 말건 제가 무슨 상관?
다래를 먹고 싶다. 비타민C가 레몬의 10배 가량 많이 들어 있다고 한다. 비타민C는 혈액 순환을 촉진시켜 주며, 면역력 증진과 피부 미용에도 좋아 꾸준히 섭취해 주는 것이 좋다나. 다래 안의 비타민C로 인해 소변 배출도 원활하게 이뤄진다. 이뇨 작용이 활발히 일어나게 되면 몸속에 남아 있는 독소와 노폐물들을 배출하여 깨끗한 혈액 유지와 부종 완화에 좋다니, 먹고 싶다. 혈액 속에 남아 있는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다 보니 염증으로 인해 생기기 쉬운 간염, 신장염 등 각종 질환 예방에 좋다고 하니 이 정도면 만병통치약?
아무튼 이 시는 청산별곡의 여러 구절을 가져와서 능청스럽게 잘 응용하는 것으로 큰 효과를 보고 있다. 또한 사투리가 아니면 범작이 되고 말았을 시가 수작이 되었다. 경상도 사투리는 전라도 사투리에 비해 시로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이 시를 보니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알겠다.
[고명자 시인]
서울에서 태어나 2005년 《시와 정신》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술병들의 묘지』 『그 밖은 참, 심심한 봄날이라』를 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