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73] 김기숙의 "이든 빵집"
이든 빵집
김기숙
파리바케트 간판이 떼어졌다
일 층 빈 가게가 어수선했다
브랜드 빵집보다 센 업종이 뭘까
중년 부부가 일 톤 트럭에
밀가루 반죽기와 오븐을 싣고 왔다
건물 세입자들이 수군거렸다
개인 빵집이래요
덕산 오일장에 줄 서는 노점 곰보빵
거기서 그냥 장사할 것이지
옆 호실 속옷 가게 사장이 말끝을 흐렸다
월세가 없는 곳을 왜 떴냐고
물어도 부부는 묵묵부답이었다
연두 빨강 머그잔에 햇빛이 자글거렸다
아담과 하와가 흰 가운을 입고 손님을 맞았다
가운에는 시장통 냄새가 배어 있지 않았다
사고팔고 흥정하는 사람 냄새도 없고
생선 비린내도 없었다
건물주의 돈나무 화분이 문 앞에 놓였다
에덴동산이 삼백이면 거저지 거저
과실나무는 어디에 놓여 있는 걸까
손님, 오픈 기념 세일해요
여사장 목소리가 사과처럼 달콤했다
부부는 노점 십 년 만에 점포로 들어왔다
이 건물 세입자들은 통창 너머를 지켜봤다
이든 빵집은 이십 평 가게를 과묵하게 지켰다
—『피정 간다』(천년의시작, 2025)
[해설]
소상공인, 소상인을 위하여
부부가 고생한 보람이 있다. ‘덕산 오일장에 줄 서는 노점 곰보빵’ 집을 하다가 돈을 꽤 모은 모양이다. 노점 십 년 만에 점포 안으로 들어왔으니 말이다. 게다가 파리바케트가 있던 곳이었는데 그 유명한 브랜드 빵집의 간판을 개인 빵집으로 바꿔 달게 했다. 부부가 마침내 월세 없는 곳을 떠나 건물주에게 월 삼백을 내게 되었으니 빵을 많이 팔아야겠다. 이십 평이나 되는 가게를 잘 꾸려갈 수 있을지 내가 괜히 걱정된다.
그런데 이들 부부는 가게를 잘 지켜갔다. 남편의 빵 만드는 솜씨가 좋았고 부인의 명랑함이 보태져 손님이 많이 오게 했을 것이다. 돌아가신 내 어머니가 30년 동안 문방구점을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동네에 있는 가게가 문을 닫으면 괜히 마음이 아프다. 자그마한 가게나마 잘 되어야지 아이들 교육비도 대고 전세금이 올라도 버티면서 이 동네의 주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이든(Eden)’은 ‘에덴’의 다른 발음이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흰 가운을 입고 손님을 맞았다”는 구절이 나오는 것이다. 단순한 빵가게가 아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면서 기쁨도 줄 수 있고, 행복감도 줄 수 있다. 가게에 가서 먹을 것이나 물건을 살 때 친절하게 대해주어 손님을 기분 좋게 해주는 상인이나 판매원이 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을 것이다. 부디 이든 빵집이 잘되기를 바란다.

[김기숙 시인]
충남 예산 출생. 가톨릭대학교 보건대학원(지역사회간호)과 고려대학교 문화스포츠대학원(문학예술) 졸업.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