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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임의 시조 읽기]

【강영임의 시조 읽기 42 】 김샴의 "보수동 책방골목"

시인 강영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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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동 책방골목

 

김샴

 

탄환이 할퀴고 간 담벼락 너머에서

철 지난 낙엽들이 너스레를 떨고 있다

고단한 피난살이가 들머리에 쏟아진다

 

방기는 사치가 되어버린 골목 짝에서

끄내끼 매여진 붕대들이 춤을 춘다

부자의 부산해지는 눈동자는 뭘 보노

 

아버지 손 꽉 잡고 보물을 찾아보자

밑줄 치는 수첩만이 유일한 살길이다

억수로 고생하면서 붕대법을 터득한다

 

걸그치는 인파 사이 날 보던 저 책장

부상당한 나에게 사람맹키로 감싸준다

향수로 존재했었던 치열한 병원이다

 

『샴을 위한 변명』 (2025.가히)

 

보수동 책방골목 / 김샴 사진: 강영임기자
보수동 책방골목 / 김샴 [사진: 강영임기자]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은 단순한 중고서점 거리가 아니다. 그곳은 익은 종이 냄새, 오래된 활자의 무게를 통해 시간의 축적을 시각화하는 도시의 깊은 주름과 같은 곳이다.

 

첫째 수 탄환이 할퀴고 간 담벼락 너머에서이미 전쟁의 잔흔을 품은 도시의 역사성을 불러온다. 보수동 일대는 한국전쟁 후부터 중고 책방의 거리로 형성되었다. 그래서 이 장면은 단순한 도시 풍경의 묘사가 아니라, 전쟁 이후의 삶을 이어온 도시의 피로를 이야기 한다.

철 지난 낙엽들이 너스레를 떨고 있다 / 고단한 피난살이가 들머리에 쏟아진다보수동이 품은 피난민이 서사와 고단한 화자의 내밀한 삶이 맞닿는 지점이며, 도시의 구조적 쇠락을 말하고 있다.

 

둘째 수와 셋째 수는 도시의 낡음만이 아니라 개인의 흔들림 즉, 어린 시절의 안정감이 사라졌음을 상징한다. 그러나 아버지 손 꽉 잡고 보물을 찾아보자는 쇠락의 정서를 단숨에 뒤집는다. 책방골목은 화자에게 단순한 유년의 공간이 아니라, 아버지가 건넨 세계의 지적 탐험의 출발점이다. 넉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중고 책을 뒤적이며 자식을 포기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생의 의지로도 읽혀진다. 그래서 이 골목은 단순한 문화적 장소가 아니라, 어둠과 희망이 공존하는 생의 현장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수 걸그치는 인파 사이 날 보던 저 책장이라고 화자는 이야기한다. 이때 시선의 주체가 달라진다. 아버지가 화자를 바라보던 그 시선은, 시간이 흘러 이제 책들이 화자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뀌었다.

 

부상당한 나에게 사람맹기로 감싸준다” ‘치열한 병원은 화자에게 내밀한 치료의 공간이자 처방약 같은 것이다. 과거 아버지가 화자를 지켜주었다면, 책과 책방골목은 현재의 화자를 감싸준다. 보호의 주체는 달라졌지만 보수동은 여전히 삶을 이어가게 하는 힘을 제공하는 장소로 묘사되고 있다.

 

「보수동 책방골목」의 가장 두드러진 미학은 공간이 단순 배경이 아니라 감정의 매개체가 된다는 것이다. 보수동 골목은 역사·도시 ·기억·개인의 층위가 동시에 드러나는 다층적 공간으로 제시되며, 시 전체의 의미를 형성하는 축이 된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화자와 아버지를 잇는 매개이자, 과거와 현재를 봉합하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시간의 중첩을 이루는 회상의 미학, 실을 섞어 짜는 것처럼 개인사와 도시사의 서정적 사회성이 독특한 안정감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도시는 사람의 몸을 기억하고, 사람의 몸은 도시를 기억한다. 겨울 추위에는 누구나 걱정이 많아진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잘 지내고 있을까 궁금하다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가장 그리운 사람이다.

 

겨울 추위와 걱정, 그리움은 생존 신호 같은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 추위에 골목 어딘가에 서 있을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다면, 그 사람이 그리운 것이다.

 

강영임 시인, 코리아트뉴스 전문 기자

 
강영임시인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2025년 제1회 소해시조창작지원금 수상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편집자주: "강영임의 시조 읽기"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
시인 강영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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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샴시인#보수동책방골목#강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