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62] 김강호의 “전철에서”
전철에서
김강호
손잡이 잡으려다 덥석 잡은 흑인 손
순간 놀라 내 손바닥 숨죽이며 들여봤다
까맣게 물들었을 것 같아 등골이 오싹했다
지그시 눈을 감자 떠오르는 아프리카
허기진 모습들이 밀물처럼 밀려와
레일에 엉겨 붙어서 덜컹덜컹 울었다
멀뚱한 검은 아이들 눈망울이 꿈틀거리며
땀에 젖은 내 손에서 방울방울 굴러 나올 때
전철은 굶주린 터널로 빨려들고 있었다

전철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손잡이를 잡으려다 순간적으로 흑인 승객의 손을 잡게 되었다. 찰나의 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손바닥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물론 피부색이 묻어날 리 없는데 나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 순간 오싹했던 것은 흑인의 피부색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 숨어 있던 편견 때문이었다.
이 작품은 그 부끄러움에서 출발한다. 차별을 비판하면서도 무의식 속에는 여전히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품고 살아간다. 시 속의 '검은 손'은 특정 인종을 의미하기보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편견의 거울이다. 손바닥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결국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눈을 감자 아프리카가 떠올랐다. 텔레비전과 신문을 통해 보았던 굶주린 아이들의 눈망울, 갈라진 대지, 메마른 삶의 풍경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전철 레일 위를 달리는 덜컹거림은 어느새 그들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그래서 작품 속 레일은 단순한 철길이 아니라 세계의 아픔이 이어지는 통로이며, 전철의 진동은 굶주림과 가난이 보내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눈망울은 생명의 상징이다. 그 눈망울이 내 손에서 방울방울 흘러나오는 장면은 연민의 눈물이자 인간으로서 느끼는 죄책감의 형상이다. 결국 내 손은 더러워진 것이 아니라 비로소 깨어난 셈이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던 무감각에서 벗어나 인간에 대한 공감으로 물들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의 '굶주린 터널'은 아프리카만을 뜻하지 않는다. 물질은 넘쳐나지만 사랑과 관심, 나눔이 부족한 현대 사회의 또 다른 얼굴이다. 전철이 그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풍요 속에서도 여전히 누군가는 굶주리고,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아주 짧은 순간의 접촉이었지만, 그 순간은 피부색을 넘어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자리였고, 세계의 아픔과 나의 양심이 마주 선 자리였다. 시를 쓰는 동안 나는 손바닥이 아니라 마음의 색깔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