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최미아 - 《완판입니다》 : 오감을 활짝 열고 닿은 풍경과 시간이 빚은 글 맛'

최미아 수필가
약속 장소에서 만난 최미아 작가는 예외 없이 트레이드마크인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한 권의 책을 무탈하게 묶어낸 탓인지 눈 외에도 얼굴의 모든 구조물들이 다 열려 한껏 더 여유롭고 환해 보였다. 찾아간 사람에겐 더할 나위 없는 환대였다.
수필 쓴 지 26년 차인 최 작가는 이번에 세 번째 수필집 《완판입니다》를 출간했다. 책을 안 읽는다고 한탄하는 시대에 그는 호기롭게도 책 제목을 ‘완판입니다’라고 붙였다. "첫 번째 수필집 《잔잔한 시하바다》와 두 번째 책 《밤달애》 몇 권이 상자에 담긴 채로 안방구석에 묶여있는 것이 마음 아파 문득 “홈쇼핑 채널에서 팔아보면 어떨까”라는 발상을 했다"고. 그는 판매 시간을 30분으로 한계짓지만 유려한 말솜씨와 진정성은 10분 안에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도 남을 것 같다.
한 작가가 한 편의 글을 쓰는 데에 들이는 공력을 값으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 최 작가의 수필집에 담긴 45편의 글들은 대부분 작가의 발품 손품 끝에 탄생했다. 그런 물리적 품을 거쳐 다듬고 털고 매만져졌기에 더 쉽게 값을 매길 수가 없다.

연노랑 바탕색 표지에는 한 여인이 턱을 괸 채 책을 읽고 있다. 책상 위에는 캐리어며 커피잔, 카메라, 빨간 우체통 등이 놓여있다. 이 물건들이 이번 수필집의 에필로그라고 점쳐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는 누구보다 책을 많이 읽고 부지런히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고 여행을 한다. 직접 본 풍경과 닿은 시간 속에서 사유를 길어 올리는 것만큼 최상의 글쓰기 방편이 어디 있겠는가. 덕분에 그는 다변화한 세상을 빠르게 받아들인다. 젊은 감성과 감각 위에서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펴서 글 편편마다 생기가 넘친다.
최 작가는 인터뷰를 청하자 “문학적 이론이나 소신 같은 것도 없는데 무슨 소리냐”고 손사래 쳤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의 글들에서 그만의 문학적 이론과 소신을 충분히 알아채고도 남는다.
그는 작품 <맹랑 설화>에서 말한다.
‘1961년 5월 어느 날, 보리누름 철이었다. 하루 두 번 연락선이 다니는 남쪽 끝 섬마을, 오전 배 지나가고 새참 때쯤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문인들을 흠모하며 자랐다. 글공부하면서부터는 언젠가 나도 괜찮은 수필가가 되지 않을까 당찬 꿈을 꾸었다. 갈수록 꿈이 깊어지다 보니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었듯’ 그해 문인들 숨결이 나를 탄생시키기 위한 것이었나? 설화 같은 참으로 맹랑 설화 같은 생각을 한다’고. 이보다 더 당위적이고 운명론적인 명분이 어디 있겠는가.
최 작가는 모든 풍경과 모든 사람과 장소에 오감을 열어놓는다. 특히 소머즈의 귀보다 더 탁월한 청력은 작품 탄생에 일등 공신이다. 공원에서 만난 노인들의 시답잖은 대작 거리, 카페에서 듣는 보험설계사의 권유, 전도사의 신앙 전도도 그의 귀를 통해 들어와 인간미 넘치고 해학적인 글 한 편으로 다듬어진다. 어느 볕 좋은 공원에서 들은 할머니들의 두서없는 만담, 집 앞 옷 가게 주인 여자의 판매 테크닉은 한 편의 단막극이나 꽁트보다 더 맛깔스럽다.
“모자가 못 보던 거네. 행자가 줬어. 멋쟁이가 쓰던 거여서 역시 이쁘네. 그런데 그거 잘못 쓴거 같은디. 거꾸로 써 봐, 그게 맞네. 거기가 껍닥이여. 표딱지가 속으로 가야재. 꽃이 밖에 와야 된 줄 알고 여태 디집어 쓰고 댕겼네. 꽃도 이쁘긴 한디 제대로 써야제. 행자는 으째 언니만 준대. 저번에 옷도 줬담서”
<벚꽃 아래 언니들> 중
‘자기 지나다니는 거 자주 봤는데 얌전하더라. 들어와서 구경해. 내가 동생 같으니까 옷 코디해 줄게. 백화점은 못 가더라도 홈쇼핑 옷은 절대 사지 마. 얌전한 얼굴 다 버려.’<좋아하는 운세> 중
최미아 작가의 수필은 여느 수필과는 조금 다르다. 일명 실험수필이다. 엄현옥 평론가가 말하듯 “고정관념과 식상함을 벗어난 전개 방식으로 수필이라는 장르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흥미를 유도”한다. 사소한 말과 평범한 이웃과 흔한 풍경도 그의 마음길을 지나면 색다르게 채색된 한 폭의 그림이 된다. 특히 그만의 화법이 담긴 대화체 형식은 너무나 생생해서 감칠맛이 그만이다. 단순히 활자가 배열된 평면글이 아니라 보고 듣는 입체글이 된다고 할까.
최 작가는 자신의 작품 중 개인적으로 <어슬렁 청계천>을 가장 아낀다고 말한다. 이 작품 또한 대표적인 실험수필로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한 번도 마침표를 찍지 않은, 이른바 한 문장 수필이다. 읽는 사람이 조금 숨가쁘지 않을까 싶지만 김소월부터 박태원, 박완서, 박수근, 이상, 김용준까지 시대를 풍미한 작가들과 함께 청계천을 걸으며 특유의 입담을 발휘하니 지루할 새가 없다.
그의 글맛은 어쩌다 ‘담박하면서 들찌근하고 맵싸하고 텁텁하고 새콤달콤하면서 새금할 때’도 있지만 결국 ‘사박사박하고 쫄깃쫄깃 아삭아삭 오돌오돌한 맛으로 남는다. 이 같은 말맛은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속담으로 쓴 자서전>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강아지 발바닥만 한 섬에서 태어나 우물 안 개구리로 살다가 제 눈에 안경인 남자를 만나 귀밑머리 풀고 남편 사업이 마파람에 호박 꼭지 떨어지듯 옴나위도 못하고 넘어간 고통도 겪었다. 그럼에도 고생 끝에 낙이 오고 쥐구멍에 볕이 들어 한시름 놨다. 넘어진 김에 쉬어갈 요량으로 붙든 글공부를 시작해 되글을 가지고 말글로 써먹'으며 세 번째 작품집까지 출간했다. 이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남편과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알콩달콩 살고 있으니 이만하면 그의 인생 참 괜찮다.
최미아 작가는 전라남도 신안 출생이다. 8남매 중 막내다. 남매들은 만나면 누가 질세라 왁자지껄한 입담을 자랑한다고 한다. 이런내력이 담긴 ‘입담’이 막내의 ‘글맛’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이번 책 출간에도 그들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단다. 올케는 책도 받아보기 전에 금일봉을 건네고 배달 사고로 미처 책을 받지 못한 형제들의 채근은 그의 삶의 자양분인 사랑이다. 특히 작은아들은 개인 SNS에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이라고 소개했다니 최 작가의 눈이 더 작아질 만하다.
그는 “이런 글도 수필이야?” 대신, 이런 수필도 있네!라고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가장 좋은 글은 술술 읽히고 공감하는 것이리라. 술술 읽다 보니 금세 마지막 장이다. ‘완판’은 따 놓은 당상이다.
출처 : 문학人 신문
작가의 말
수필을 만난 지 26년이다.
그동안 보고 듣고 읽는 모든 것이 쓰기 위해서였다
치열하진 않았지만, 수필과 거리를 둔 적은 없었다.
세 번째 수필집이다.
주제에 따른 구별없이 글을 묶었다.
모아 놓고 보니 실험수필이 많다.
"이런 글도 수필이야?" 대신
"이런 수필도 있네!" 하고 재미있게 읽어주면 좋겠다.
뒤표지 글을 써주신
민충환 선생님, 엄현옥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수필 안에 있어서 내삶이 풍성했다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
추천사
《잔잔한 시하바다》,《밥달애》에 이은 세 번째 수필집이다. 앞의 두 작품집에서 서정성이 짙게 표현되었다면 이번에는 실험적인 수필이 상당수 표현되었다. 이는 새로운 수필을 모색하려는 작가 노력의 일환이라 생각된다. 앞으로 서정적인 바탕에 실험적인 내용이 합일된 굽고 청신한 수필이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민충환(전 부천대 교수)
최미아의 수필은 소소한 일상에서 시작하지만, 고정관념과 식상함을 벗이난 전개 방식으로, '수필이라는 장르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홍미를 유도한다.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내세운 대상이 1인칭 화자로 변신하거나 작품 전체를 대화체 또는 독백으로 채우며 긴장과 반전, 유머, 눈을 떼지 못할 역동성으로 독자를 흡인한다.
작가에게 다가온 대상과 타인의 존재론적 관계를 설득력 있게 구사하며, 체험된 언어를 전달하기 위한 테제toe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고향과 연관된 소재를 탐구하는 일련의 작품들도 익숙함에서 탈피하려는 실험정신과 무한한 상상력으로 공감의 여지를 넓힌다. 언어의 한계에 도전하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한다.
표제작인 '완판입니다.에서는 책을 읽는 행위조차 소비로 환원되는 시대에'책이 타인과의 소통과 감정 교류의 매개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수필집이 판매되지 않는 세태를 비들어 완판이라는 상업적 성공을 꿈꾸면서도, 수필율 봉해 내면의 진실과 삶의 의미를 추구하려는 작가만의 철학이 담겨 있다.
엄현옥(문학평론가,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