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노을 길 _ 성명진
[이승하 시인의 하루에 시 한 편 2 ]
노을 길
성명진
옆집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한사코
업으려 하고 있었다
아버지랑 함께
길모퉁이를 도는데
“누가 보면 어쩌려고.”
“저기까지만 업혀.”
다리를 두드리면서도 마다하는
할머니 앞에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어두워지려다
잠시 환해진 저녁 세상
아버지가 나에게 고갯짓했다
우리는 살금살금 물러나
다른 길로 돌아서 갔다
―『밤 버스에 달이 타 있어』(창비, 2025)에서
![[사진 : 노지영 기자]](/_next/image?url=https://cdn.presscon.ai/prod/125/images/20250302/1740878202632_490835313.jpeg&w=828&q=100)
<해설>
이 동시 속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몇 년을 해로한 것일까? 50년은 족히 같이 산 노부부일 것이다. 산보 나온 것 같은데 할머니의 무릎이 안 좋을 테고, 분명히 “아이고 다리야!” “여보, 좀 쉬었다 갑시다.”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업어주겠다고 할머니 앞에 앉아 있는데 할머니는 누가 볼지 모른다고 업히지 않으려 한다.
이 광경을 본 아버지가 나(화자)에게 다른 길로 가자고 고갯짓을 해서 두 노인이 눈치 못 채게 물러나는 저녁 풍경화가 참으로 아름답다.
내 사는 동네 근처에 남성사계시장이라고 있는데 노부부가 간혹 산보 겸 물건 사러 나오면 눈여겨보게 된다. 내 주변의 친구나 지인의 경우 대다수 부모가 별거 중이다. 한 분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가 계시기에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남녀가 장성하여 가정을 이루고, 노후에도 친구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요즈음엔 예식장에 가면 정말 간절히 빌고 온다. 저 두 사람 백년해로해라. 아기도 두셋 낳고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아라.
대한민국의 이혼율이 5%인지 10%인지 모르겠지만 애를 안 놓고 이혼을 했다, 황혼이혼을 했다는 얘기를 요즈음 들어 부쩍 자주 듣는다.
이 동시의 내용이 목격담인지 상상력의 산물인지 알 수 없지만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돌아가신 내 부모님도 생각이 나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게 하는 아름다운 풍경화로 보여주신 성명진 시인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고맙습니다.
성명진 시인 프로필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다. 1990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고, 1993년 『현대문학』에 시가 추천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동시집 『축구부에 들고 싶다』 『걱정 없다 상우』 『오늘은 다 잘했다』와 시집 『그 순간』 『몰래 환했다』를 펴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나무 앞에서의 기도』 『사람 사막』 등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