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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산의 책다락 1 ] 헤르만 헤세 『 황야의 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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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산의 책다락 1 ] 헤르만 헤세 『 황야의 이리 』

효산 남순대 시인
입력
효산 남순대 시인의 [효산의 책다락], 코리아아트뉴스 독자 여러분을 찾아 갑니다

■冊 紹 介
 

헤르만 헤세의 병적이지만 아름답고도 놀라운 상상력!
황야의 이리처럼 홀로 살아가는 자의 끝없는 자기 성찰과
물질 과잉의 현대 문명사회를 비판한 환상 소설


“이 책은 절망하는 사람의 책이 아니라 믿는 사람의 책이다.

《황야의 이리》가 병적인 모습과 위기를 묘사하고 있지만
죽음과 파괴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치유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많은 분이 깨닫는다면 기쁘겠다.”

  _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는 작품에서 일관되게 새로운 가치 기준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주인공이 자신의 내면에서 삶의 방향을 찾아가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진정성 있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헤세의 그 어떤 소설보다도 자전적인 《황야의 이리》 역시 이러한 기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 존재의 고독과 자아의 이중성,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으며, 현대의 문명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주인공 하리 할러는 현대 사회 속에서 고립감과 자아의 혼란을 겪으며 자신이 속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는 문명화된 존재인 동시에 사회성을 거부하는 야만성을 가진 ‘황야의 이리’다. 인간과 이리라는 두 가지 본성을 가졌다고 여기는 그의 내적 분열은 깊은 고독과 자아 상실로 이어진다. 하지만 우연히 ‘검은 독수리’라는 술집에서 헤르미네를 만나 춤을 배우고 가면무도회와 마술 극장에 가면서 자아의 두 세계는 통합과 회복의 여정을 향해 나아간다.

■書 評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 고통과 고립을 잔인할 정도로 명료하게 묘사한다. 하지만 덜 화려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 바로 치유를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_〈가디언〉


헤르만 헤세의 그 어떤 소설보다도 가장 자전적인 소설!
인간과 이리, 두 세계를 살아가는 한 인간의
갈등과 자아 분열 그리고 치유의 이야기


“일부는 병적이지만 일부는 아름답고도 생각이 깊은
이 놀라운 상상에 관해서라면, 이 말은 꼭 하고 넘어가야겠다.
이 기록에서 (……) 내가 본 것은 그 이상이다. 시대의 기록이다.”


헤세의 작품 중 가장 자전적인 환상 소설

헤르만 헤세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독일어권 작가 중 한 명이다. 헤세는 시, 에세이, 단편소설, 장편소설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으나 그중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1927년에 출간된 《황야의 이리》다. 이 소설은 특히 1960년대 히피 운동의 영향 아래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 1969년에는 단 한 달 만에 36만 권이 팔린 적도 있다고 한다. 

《황야의 이리》가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헤세의 작품은 대체로 전통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을 거부하지만 아직 새로운 가치의 기준을 찾지 못한 한 젊은이가 방황하고 성장하며 자신의 내면에서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때로는 섬세하게, 때로는 단호한 문체로 그려낸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시대를 불문하고 삶의 의미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존재 이유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준다. 

《황야의 이리》 역시 이러한 기본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이 소설이 다른 작품에 비해 더 큰 사랑을 받은 것은 아마도 주인공 하리 할러가 느끼는 절망과 방황이 더 처절하고 진정성 있게 다가오고 시민적 삶에 대한 반감과 저항이 더 노골적으로, 더 자유분방한 형태로 묘사되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특징은 아마도 이 소설이 (주인공 이름의 이니셜이 헤르만 헤세의 이름과 같다는 데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듯이) 헤세의 그 어떤 소설보다도 더 자전적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목을 매달거나 아니면 유머로 받아들이거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1925년 8월, 헤세는 자신의 후원자 중 한 명이던 게오르크 라인하르트에게 새로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제가 계획하고 있는 황야의 이리에 대한 이 환상 소설이 진짜로 쓰이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은 웃기게도 자신이 절반은 사람이고 절반은 이리라는 사실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반쪽은 퍼먹고 퍼마시고 살인을 하는 그런 일을 하려 하고, 다른 반쪽은 생각을 하고 모차르트를 듣는 것 같은 일을 하려고 하죠. 그래서 문제가 생겨나고 그 사내는 잘 지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다 마침내 자신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길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목을 매달거나 아니면 모든 것을 유머로 받아들이거나.” 

《황야의 이리》에 대한 이 간략한 묘사는 소설의 주인공과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를 매우 잘 설명해주고 있으며, 인간 존재의 고독과 자아의 이중성,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주인공 하리 할러는 중년의 남성으로, 현대 사회 속에서 고립감과 자아의 혼란에 자신이 속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는 문명화된 존재인 동시에 야만성을 가진 ‘황야의 이리’다. 인간과 이리라는 두 가지 본성을 가졌다고 여기는 그의 내적 분열은 깊은 고독과 자아 상실로 이어진다. 하지만 우연히 헤르미네를 만나 춤을 배우고 가면무도회와 마술 극장에 가면서 자아의 두 세계는 통합과 회복의 여정을 향해 나아간다.


인간과 짐승, 상반된 두 세계를 살아가는 자의 내면의 이야기

《황야의 이리》는 시민 사회와 편협한 시민 사회가 포용하지 못하는 거친 이리의 세계로 구성된 작중 세계는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로 이루어진 《데미안》의 세계 구성과 동일해 보인다. 주인공들이 이 상반된 두 세계를 포용하는 삶의 길을 찾아간다는 점에서도 두 소설은 유사하다. 그러나 《황야의 이리》에서는 밝은 세계, 편협한 시민 사회가 구체적인 사건들을 통해 보다 디테일하게 묘사되고 있으며 훨씬 더 신랄하게 비판받고 있다는 점, 어두운 세계가 보다 분명하게 인간의 자연적 속성 및 성 욕망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큰 차이를 보인다. 

무엇보다도 두 소설을 전혀 다른 작품으로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주인공 하리 할러가 이제 막 성장하는 청소년이나 젊은이가 아니라 긴 세월 동안 삶의 모순에 괴로워하며 이제는 지쳐버린 중년의 사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끊임없이 자살을 생각하는 이 사내가 《데미안》을 발표하고 10여 년이 지나는 동안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며 지쳐버린 헤세의 자화상이라는 사실을, 이 소설이 그만큼 더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이 책은 절망하는 사람의 책이 아니라 믿는 사람의 책이다. 《황야의 이리》가 병적인 모습과 위기를 묘사하고 있지만 죽음과 파괴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치유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많은 분이 깨닫는다면 기쁘겠다. _헤르만 헤세


★ 한 인간의 영혼에 내재한 질병을 흥미롭고 매혹적으로 다뤘다. 부르주아 사회를 가차 없이 고발한다. _〈뉴욕타임스〉


★ 고통과 고립을 잔인할 정도로 명료하게 묘사한다. 하지만 덜 화려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 바로 치유를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_〈가디언〉


★ 이것은 루소의 《고백록》보다 어둡고 거칠며 모든 고백서 중에서 가장 무자비하고 가장 가슴 아픈 책이다. _쿠르트 핀투스


★ 헤세는 암시, 미묘함, 영적 암시를 담은 작가다. _〈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
 

헤르만 카를 헤세 (Hermann Karl Hesse, 1877 ~ 1962)는 독일계 스위스인이며, 시인, 소설가, 화가.


●著者:  헤르만 카를 헤세 (Hermann Karl Hesse, 1877 ~ 1962)는 독일계 스위스인이며, 시인, 소설가, 화가.

1877년 7월 2일 독일 남부 시인의 고장 슈바벤 주의 뷔르템베르크 소재 소도시 칼프에서 개신교 선교사이던 아버지 요하네스 헤세와 어머니 마리 군데르트(1842-1902)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전 남편을 잃고 자신의 아버지 제자로 있던 요하네스 헤세와 32세 때에 재혼하였는데, 그녀가 5살 연상이었다. 요하네스 헤세는 에스토니아 출신으로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한 적이 있는 선교사였고, 외삼촌 빌헬름 트는 일본에서 활동한 교육가로 불교연구의 권위자였다. 이러한 환경은 헤세가 동양 사상에 관심을 갖게 했다. 어머니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 두 아들이 있었고 헤세의 형제로는 누나 아델레(1875-1949), 남동생 파울 (1878-1878), 여동생 게르트루트(1879-1880), 여동생 마리(1880-1953) 그리고 남동생 한스(1882-1935)가 있다.[1] 1881년-1886년 양친과 함께 바젤로 이사하여 거주했다. 1883년 아버지가 스위스 국적을 얻었으며, 1886년 (9세) 다시 칼프로 돌아갔다.

효산 남순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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