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임의 시조 읽기 13】이명숙의 "지금, 은 생략할 수 없는 이름이다"

지금, 은 생략할 수 없는 이름이다
이명숙
이미 늦은 거면서 꽃대 하나 세울 궁리
필지 안 필지 몰라도 최선 한 척 띄우고
분홍의 중심을 태운 꽃비 포도동 날리고
이미 늦은 거면서 세상 중심이 될 궁리
뿌리 없이 피는 꽃 대단한 게 되거든
첫눈이 폭설처럼 와도 선물인 게 되거든
지금은 생략할 수 없는 푸른 이름이다
바람이 흐느껴도 무거운 비가 와도
두 개의 눈동자 깊숙이 하루해가 저물어도
《제주문학》 (2025. 봄호)
봄은 다 가고 여름은 문 앞에 이르렀는데, 아파트 귀퉁이 그늘진 화단에 심어놓은 씨앗 기척 없다. 햇살을 마음껏 맞이하지 못해서, 이미 늦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이명숙 시인의 「지금, 은 생략할 수 없는 이름이다」는 이미지가 잘 그려지는 한 폭의 풍경화 같다. 이 이미지에 참고 견디는 힘, 포기하지 않는 마음, 취준생과 같이 중의적인 의미를 불어넣어도 잘 읽힌다.
대한민국 청년 실업률이 코로나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그러한 원인은 한국경제의 역성장, 청년들이 선호하는 양질의 직장 부족, 경력직을 더 선호하는 기업도 한몫을 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에서도 시인의 시처럼 필지 안 필지 몰라도 꽃대 하나 세울 궁리, 늦은 거 알면서도 세상 중심이 되려고 하는 청년들도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환경과 지닌 힘이 다르다. 출발선부터 우위에 서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그 출발선에 도달하려고 수십 배 노력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귀퉁이 그늘진 땅속 씨앗이겠지만, 우리가 기다리고 기회를 만들어준다면 멋진 싹을 틔울 것이다.
눈 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은 없지만, 그 씨앗은 싹 틔우기 위해 쉼 없이 움찔거릴 것이다. 그 움직임이 뿌리를 내리고 그 힘으로 싹을 올리고 꽃대를 올릴 것이다. 바람이 흐느껴도, 무거운 비가와도, 불가능해 보여도 올릴 것이다. 참고 견디며 도전하는 그대들이, 생략 할 수 없는 푸른 이름이다.
강영임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전문 기자

서귀포 강정에서 태어나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편집자주: "강영임의 시조 읽기" 코너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