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해설 ] 김은자의 "눈물 사용 설명서"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73]
눈물 사용 설명서
김은자
친구는 안구 건조증이라며
핸드백에서 작은 약병을 꺼내 열고
인공눈물 몇 방울 눈 속에 떨어뜨렸다
죽은 아들 이야기를 하던 중
‘이놈의 안구 건조증 때문에…’라며
눈물이 뺨 위로 흘러내렸다
먼저 간 자식 눈물도 아깝다더니
더 이상 울 힘도 없다더니
눈 안쪽 깊숙이
눈물을 들이는 친구에게
슬픔의 노크 소리가 들렸다
하늘에 따지듯 고개를 쳐들고
물약을 눈에 넣던 친구
깜빡이듯
눈을 여러 번 감았다 뜨더니
시력을 잃은 사람처럼
눈을 치켜뜨고 고개를 내젓던 친구는,
눈물 마르는 병을 앓고 있는 중
눈물층에 이상이 생길 만도 하지
하루아침에 생때같은 아들을 잃었으니
세상이 뻑뻑해지면서
천길 낭떠러지 시력이 깜깜해져
퍼내고 퍼내다가
씻고 또 씻다가
오장육부 물이 바닥까지 말라버렸을 터이지
친구의 병명은 안구 건조증
눈물의 진피를 바꾸기 위해
가짜 눈물로 병을 치료하는 중이다
무덤까지 데리고 가야 할 듯하다
―『그해 여름까지가 수선화』(상상인, 2025)

[해설]
아들 잃은 친구의 슬픔을 헤아리다
재미교포 김은자 시인의 시니 미국에 사는 한인 친구의 사연이 아닌가 싶다. 별안간 아들을 잃고 슬픔에 잠긴 친구가 안약을 눈에 넣는 것을 본다. 친구의 말은 안구 건조증 때문이라고 하지만 눈물샘이 말라붙은 이유를 알고 있는 화자는 해줄 말이 없다.
안약을 눈에 넣어 흘러내리는 물은 안약인가 눈물인가. 사람이 만든 약인가 사람 몸에서 생겨난 물인가. 시인은 말한다. 네 오장육부의 물이 바닥까지 말라버렸을 거라고. 가짜 눈물로 네 눈병을 치료하는 중이라고.
비극은 어디에나 있다.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의 슬픔도 세월이 지나면 옅어지겠지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날이 돌아오면 엄마와 아빠는 울음이 또다시 솟구칠 것이다. 세상의 비극을 예의 주시하여 형상화하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다. 중국인들은 자식 잃은 슬픔을 ‘참척慘慽’이라고 표현하였다. 참담한 아픔, 처참한 슬픔이라는 뜻이다. 무덤까지 데리고 갈 친구의 슬픔을 「눈물 사용 설명서」로 표현한 시 앞에서 망연자실하며 5월 12일의 아침을 맞는다.
[김은자 시인]
김은자 시인은 미국 뉴저지주 에머슨에서 살고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숙명여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 1982년이었다. 즉 이민 생활을 한 지도 어언 40년이 넘었다. 2004년 <미주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고 『시문학』 신인상을 통해 국내 문단에서도 등단하였다. <미주중앙일보>에 오피니언 문학 칼럼인 ‘문학 산책’을, <뉴욕일보>에 시 칼럼인 ‘시와 인생’을 연재했으며 뉴욕라디오코리아(AM 1660)의 ‘K’라디오 문학 프로그램인 ‘시詩쿵’을 진행하였다. 지금은 ‘붉은작업실’이라는 문학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시집으로 『외발노루의 춤』『붉은 작업실』『비대칭으로 말하기』가 있고 시선집으로 『청춘, 그 포스트모더니즘이여』가 있다. 최근에 제4시집을 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