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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잇는 공간, DIE GALERIE — 독일 미술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다”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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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연결된다: DIE GALERIE의 시간과 공간의 미학”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고요한 거리, 그뤼네부르크베크(Grüneburgweg)를 따라 걷다 보면 하나의 시간의 층을 마주하게 된다. 겉으로는 단정하고 절제된 현대적 공간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단순한 갤러리가 아닌 하나의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그곳이 바로 DIE GALERIE.

DIE GALERIE 제공

시간을 기획하는 갤러리, DIE GALERIE

 

프랑크푸르트 중심부, 조용한 거리 위에 자리한 DIE GALERIE는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다. 이곳은 ‘예술의 흐름’을 기획하는 장소이며, 하나의 시대를 읽고 또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플랫폼이다.

갤러리스트 피터 펨퍼트(Peter Femfert)

갤러리의 이야기는 4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갤러리스트 피터 펨퍼트(Peter Femfert)는 20세기 미술이 지닌 급격한 변화와 그 안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는 갤러리를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닌, 미술사의 전환을 읽어내고 제시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 철학은 지금까지도 DIE GALERIE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심축이 되고 있다.

 

이 공간은 처음부터 작품을 사고파는 시장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질문에서 시작된 장소였다.


독일 미술은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
분단의 시간 속에서도 예술은 어떤 언어를 유지했는가?”

 

이 질문들은 자연스럽게 동독으로 향한다. 냉전의 경계 속에서 독자적으로 형성된 동독 미술은 서구 미술사에서 종종 주변부로 밀려나 있었지만, DIE GALERIE는 그 흐름을 중심으로 끌어올린다. 단순한 재조명이 아니라, ‘연결이라는 방식으로. 분단과 통일, 그리고 그 이후까지 이어지는 독일 미술의 흐름을 하나의 서사로 풀어내는 것이 이 갤러리의 핵심이다.

 

갤러리의 전시를 따라 걷다 보면 하나의 공통된 감각이 있다. 그것은 구상이다.
사진처럼 정밀한 묘사가 아니라, 인간과 현실을 응시하는 태도로서의 구상. 이곳에서는 독일 구상 회화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닌, 시대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특히 라이프치히 화파(Leipzig School)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전시는, 개인의 내면과 사회적 현실이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DIE GALERIE의 이야기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전시는 언제나 현재를 향한다. 회화뿐 아니라 사진,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가 공존하며, 역사적 맥락 위에 동시대적 해석이 덧입혀진다. 그래서 이 공간은 보는 곳이라기보다 읽는 곳에 가깝다. 작품 하나하나가 문장이 되고, 전시 전체가 하나의 긴 문단처럼 이어진다.

 

이곳에서 만나는 작가들은 특정 세대에 머물지 않는다.
 

동독 출신 작가부터 통일 이후 등장한 신진 작가까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예술가들이 하나의 흐름 속에 배치된다. 그 결과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예술은 시대를 얼마나 반영하는가, 그리고 얼마나 넘어서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국경을 넘어 확장된다.

KIAF 2019 피터 펨퍼트(Peter Femfert)(중앙)

그리고 그 확장의 한 장면이 바로 서울에서 펼쳐졌다.

 

2019년 가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KIAF (Korea International Art Fair) 2019.
수많은 글로벌 갤러리와 컬렉터가 모인 그 자리에서 DIE GALERIE는 하나의 강렬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부스 한가운데, 마치 시간을 압축해 놓은 듯한 황금빛 조각이 서 있었다.

Constantin Brâncuși의 대표작 프린세스 X (Princess X)'

그 작품은 바로 Constantin Brâncuși의 대표작 프린세스 X (Princess X)’.

 

빛을 받아 유려하게 반사되는 브론즈 표면,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곡선. 그것은 단순한 조각이 아니라, 형태 그 자체로 존재하는 개념에 가까웠다. 나폴레옹 가문의 공주가 고개를 돌린 옆모습을 극도로 단순화한 이 작품은, 발표 당시 외설 논란으로 전시 금지까지 겪었던 문제작이기도 하다.

 

그러나 100여 년이 지난 KIAF 2019의 현장에서, 그 논란은 오히려 작품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더욱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관람객들은 작품 앞에서 멈췄고, 사진을 찍었으며, 다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결국 이 작품은 약 730만 달러(한화 약 87억 원)에 달하는 거래가액으로, 해당 아트페어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품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전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DIE GALERIE가 지향해 온 역사와 현대의 연결이 가장 극적으로 구현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동독 미술과 독일 구상 회화를 중심으로 해온 이 갤러리가, 동시에 현대 조각의 기원을 상징하는 브랑쿠시를 통해 국제 미술사의 축을 서울 한복판으로 가져온 것이다.

 

그날의 부스는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된 이야기, 동유럽과 서유럽을 거쳐 형성된 미술의 흐름, 그리고 그것이 한국 시장과 만나는 지점. 그 모든 시간이 하나의 조각 위에 겹쳐져 있었다.

결국 DIE GALERIE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예술은 장소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리고 진정한 갤러리는 작품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과 세계를 만나게 하는 곳이라고.
 

DIE GALERIE는 유럽 주요 아트페어뿐 아니라 국제 무대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며, 독일 미술을 세계에 소개해 왔다. 특히 한국과의 접점도 인상적이다. 이 갤러리는 2019년 한국국제아트페어인 KIAF (Korea International Art Fair) 2019에 참가하며 아시아 시장과의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했다. 당시 전시를 통해 독일 구상 회화와 동독 미술의 맥락을 한국 관람객과 컬렉터에게 소개하며, 유럽 미술과 한국 미술 시장을 잇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프랑크푸르트라는 도시 역시 이 갤러리의 중요한 일부다

금융과 국제 교류의 중심지라는 도시의 성격은 DIE GALERIE의 또 다른 얼굴을 만들어낸다. 이곳은 지역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국제 아트페어와 글로벌 컬렉터 네트워크를 통해 끊임없이 외부와 연결된다. 독일 미술을 세계로 확장시키는 창구이자, 동시에 세계 미술을 독일적 맥락 속에서 다시 읽어내는 교차점이다.

 

공간 또한 조용히 말한다.


과도한 장식 없이 설계된 전시장은 작품이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비워져 있다. 전시마다 달라지는 동선과 조명은 관람자의 시선을 유도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머물게 한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본다는 행위가 머문다는 경험으로 확장된다.

 

결국 DIE GALERIE는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예술은 기억을 어떻게 보존하고, 또 어떻게 새롭게 쓰는가.

홈페이지: https://die-galerie.com/en/about/?utm_source=chatgp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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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kanlimmtaik/224233455980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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