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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희선의 풍경이 있는 시심 4] 아직도 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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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일반

[지희선의 풍경이 있는 시심 4] 아직도 내겐

시인 지희선
입력
Big Dalton, Glendora [사진 : 지희선  ]

아직도 내겐


지희선 


아직도 내겐, 가야할 길이 있고 
건너야 할 다리가 있고 타고 
가야할 애마가 있다.
 

아직도 내겐, 들어야 할 새소리가 있고 
계곡 물소리가 있고 남겨 놓은 님의 노래가 있다.
 

아직도 내겐, 
올려다 볼 청잣빛 고운 하늘이 있고
 그 너머 찾아 가야 할 본향이 있고 
 거기서 만나야 할 사무친 사랑이 있다. 
 

( 장소 : Big Dalton, Glendora )
 

Big Dalton, Glendora [사진 : 지희선  ]

단상 - 독산행 
 
오늘, 요일을 혼동하여 산행을 혼자 하게 되었다.  혼자 하다 보니, 사진과 영상을 마음대로 찍을 수 있어 좋았다. 시간에 구애됨 없이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독산행을 하다 보니 문득 한 아이가 떠올랐다.

대학 시절 이야기다.  독산행을 좋아하던 한 아이가 있었다. 현충일을 맞아, 시내 각 대학 학보사 기자들이 딸기밭 합동 야유회를 가지게 되었다. 중간쯤, 드링크와 음식이 떨어지자 회계 담당인 나와 신참인 그 애가 짐꾼으로 지목됐다. 가게가 있는 아랫 마을은 꼬불꼬불 산길을 한참 내려 가야 했다. 저나 나나 처음 보는 사이. 할 말이 없어 우린 묵묵히 내려 갔다. 올라 올 때도 좁은 산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말없이 걸었다.

중간쯤 다다랐을 때 그 애가 불쑥 물었다. 서울에서 내려 온 그 애는 사근사근하고 말이 예뻤다.
“산행을 좋아하세요? 저는 산행을 좋아하고 혼자서도 잘 다녔는데 여긴 처음이라…”
그때 나는 장로교 고신파 교회를 다니던 고지식한 애라 곧이 곧대로 대답했다.
“저는예, 주일날에는 교회 가기 때문에 산행 잘 안 다닙니더. 그래서 산은 잘 몰라예!”
그 애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는지 말 머리를 돌려 자기 신상을 털어 놨다.

나랑 나이가 같지만 재수를 해서 나보다 한 학년 낮은 걸 알게 되었다. 명색이 서울 명문고 출신인데 왜 지방으로 내려 왔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모임 장소인 버스 정류장에 제일 처음 나타난 것도 그 애였다. 애 아빠는 아닐 텐데 꼬마 손을 잡고 나타난 게 좀 의아했다. 꼬마는 조카라고 웃으며 소개했다.눈썹이 짙고 하얀 얼굴에 잔잔한 눈웃음이 정겨웠다.

그 애 첫인상은 한 마디로 ‘눈부셨다.'  하지만, 그 느낌이 내게 특별한 의미를 주진 않았다.특별히 심장 박동수가 높아진 것도 아니었다.그저 객관적인 평가였다.

나는 빨리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길 바라며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오가는 사람이 많은 공공 장소에서 남여 대학생 단 둘이 서 있는 게 민망했다.이유는 단 하나. 괜히, 연애한다 할까 봐.
연애는 주로 날라리가 한다는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때는 지나치게 남의 눈을 의식하며 살았다.

교회 멘토같은 T 오빠가 ’한 여자에게는 두 남자가 필요하고, 한 남자에게는 두 여자가 필요하다‘고 교육시킬 때도 눈만 껌뻑거렸다. 친구와 애인은 다르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장이 하난데, 어떻게 동시에 두 남자를 품을 수 있지? ' 

그저 아리송할 뿐이었다.

한마디로 촌스러웠던 나는 대학 졸업할 때까지 맥주도 술이라고 오렌지색 ’환타‘만 마셨다. 그 애가 산행 안내를 부탁할 사람으로 나를 고른 건 실수였다. 그 애는 흐느적대며 고고춤까지 잘 춰 여대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그때 벌써 킬힐을 신고 다니던 바람둥이 내 친구도 노골적으로 호감을 표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애는 여자들에겐 큰 관심이 없는 듯했다. 다만, 신입생이라 그런지 선배들에게 깎듯이 대하는 게 돋보였다. 해가 지자, 야유회는 끝났고 우리는 각기 제 일상으로 돌아 갔다.

곧 여름방학이 시작 되고 하계 봉사를 떠났다. 아폴로 눈병이 만연하고 유신반대 운동이 일상을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 초가 지붕을 걷어내고 알록달록 플라스틱 지붕으로 바꾸는 새마을 운동으로 시골은 시끌벅적했다. 

취재차 봉사팀에 동행하긴 했으나 사실 내 처지가 말이 아니었다.  나는 아폴로 눈병으로 시커먼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데다, 긴 생머리를 한 묶음으로 땋아 영락 없는 ’여성동무‘였다. 그래도 열성은 차고 넘쳐, 마지막 날 동 대항 장기자랑에서 우리가 담당한 면이 우승하는 바람에 붕 떴던 기억이 난다.

2주간의 하계 봉사를 끝내고 오니, 학보사 메일함에 두 통의 편지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초록펜으로 단정히 쓴 글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뜻밖에도 그 애로부터 온 편지였다. 하나는 흔히 말하는 러브 레터요, 또 하나는 답장을 받지 못한 서운함을 토로한 편지였다. 편지 내용을 통해 그 애가 내 고향 마산에서 하계 훈련을 받고 있다는 걸 알았다. 문득, 장난기가 동했다. 답장 대신, “나, 여기 있소!” 하고 나타나 놀래키고 싶었다.

마침, 마산 도립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오빠를  만나러 간다는 친구가 있어 앞장 세워 떠났다.
아뿔사. 정수리에 뜨거운 8월의 태양을 쏘이며 몇 리를 걸어 들어간 훈련장에 그는 없었다.
바로 하루 전 날, 훈련을 끝내고 돌아갔다는 거였다.

돌아 나오는 길, 패티 김의 ’하와이 연정‘이 뱀처럼 우리를 휘감던 기억이 난다.
‘사랑이란 즐겁게 왔다가 슬프게 가는 것…    사랑이란 살며시 왔다가 괴롭게 가는 것…'

어쩌면, 그 애와 나의 사귐에 대한 예시였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그 애가 내 썸머 프로젝트였던 창작 동화와 모조지 전면 삽화를 그려 주는 걸 계기로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림에 젬병인 나에게 그 애는 구세주였다.  그 애가 하루 결강까지 해 가며 그려준 작품과 유화로 그려 준 내 은박지 초상화는 가히 일품이었다. 하지만, 유난히 인기 많은 그 애가 내 몫이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만날 때마다 헤어지자는 말을 달고 살았다. 겨울 방학이 되고 그애가 독감에 걸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는 걸 기회로 안녕도 없이 헤어졌다.  겨우 6개월 남짓한 로맨스.

그러나 그 애가 준 설렘과 가슴 두근거림과 자랑스러움과 환희에 찼던 기억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첫사랑에 대한 실연의 아픔을 잊기 위해 멀리 지방 대학까지 내려 왔다는 순애보.

닐 다이아몬드의 솔리타리 맨과 합하면 럭키 7이 되어 좋다는 숫자 34와 초록펜을 사랑했던 그 애.  난 그 애에게 첫사랑이 되지 못했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그 애가 어쩌면 내 첫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화전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 애가 방명록에 쓴 글이 아직도 아롱거린다.

  물결마다 모두들 입을 맞추고
  물결마다 모두들 잊고 가는 꽃.

초록펜으로 쓴 <물망초> 싯귀.

물결이 잊고 간다고 그 애는 ‘우리 젊어 푸르렀던’ 그 날의 추억까지 잊었을까. 찰찰 소리 내며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아니라”고 “아니라”고 대변해 주는 것같다. 

“알라야! 나는 마 니 문득 문득 생각한데이!”

듣거나 말거나 개울물에 내 마음을 실어 보냈다.  그 애가 좋아하던 초록 펜을 연상시키듯, 연초록 새 잎이 진초록으로 물들어 간다. 

Big Dalton, Glendora [사진 : 지희선  ]

 

지희선 시인
지희선 시인

지희선 시인

시조시인, 수필가, 프리랜서 기자, 한글학교 교사

 <미주가톨릭다이제스트> 및 <남가주가톨릭연합월보> 편집국장, 미주한국문인협회> 부회장 및 시조분과위원장, <세계시조포럼>미주 발기인 등 역임. 현재 <미주가톨릭문학> 편집국장 및  <KAN> 미주발기인으로 활동. 

<미주중앙일보신춘문예> 수필 당선 이후, 각 문학지와 신문을 통해 활발한 문학 활동하고 있음. <한영시조집> 5월 말 출판 예정.
 

e-mail : [email protected]
web site : imunhak.com  <지희선문학서재> 운영

[편집자 주:  풍경사진과 함께하는 포토시, 디카시, 영상시 등을 아우르는  "풍경이 있는 시심" 을  연재하면서, 미주 지역 문화 예술 분야 취재, 편집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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