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임의 시조 읽기 11】임성규의 "땅끝에 와서"

땅끝에 와서
임성규
두 발 쿵쿵 다지다 손바닥 마주치다
얼굴 붉어지다 목소리 굵어져서 미친 듯이 고래고래 소리 를 지르다가 만나는 득음 같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엎질러진 물잔 같은, 아버지가 건네준 마지막 유언 같은, 엄마가 남겨놓은 오십 년 씨간장 같은, 그래서 그래서 끝내 모자란 것 같은, 부서지고 무너지고 달랑 남은 금반지 빼서 팔아버린 내 가난한 생 같은, 이 거친 손을 다시 잡아주는 당신 같은,
여기서 지금 여기서 눈물 왈칵 쏟을 것 같은
『바늘이 쏟아진다』 (2023. 문학의전당)
살다 보면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면 안 되는 이에게 말할 때도 있다.
떠나보내지 말아야 할 사람을 떠나보낼 때도 있다.
엎질러진 물 잔 같은, 마지막 유언 같은, 오십 년 씨간장 같은.
뒤늦은 후회로 어둠속에 갇혀 악을 쓰며 운다.
두 발 쿵쿵 다지다 손바닥 마주치며 온몸으로 운다.
임성규 시인의 「땅끝에 와서」는 매듭짓지 못한 것들, 연결점이 끊어져나간 수많은 지점들, 이루지 못한 것들이 얼룩처럼 번져있다. 언어로 기록될 수 없거나 말할 수 없는 것들, 지우지 못한 것들이 다른 시간의 흔적들로 누군가에게 말을 건넨다.
눈물 왈칵 쏟을 것 같은 날선 감각으로, 시인은 우리를 땅 끝으로 데려왔다. 땅 끝은 어느 곳인지 알 수 없다. 땅끝 마을 해남일 수도 있고, 빛줄기 찾아드는 미지의 어느 곳일 수도 있다. 그리고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곳일 수도 있겠다. 원망, 분노, 상실, 후회를 다 게워낸 청정한 마음이거나 득음(得音)일 수도 있겠다.
누구에게나 살다 보면 사람 힘으로 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세상 끝에 서 있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 온기 주는 그 무언가가 함께 한다는 믿음, 한 번쯤 내게도 기회가 올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으면 그 길이 덜 외롭고 덜 힘들 것이다.

서귀포 강정에서 태어나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 했으며 ,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편집자주: "강영임의 시조 읽기" 코너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