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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28] 송영희의 "보이스피싱"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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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송영희

 

청소를 마치고

모차르트와 마시는 차 한 잔은 달콤했다

찻잔에 온기가 식을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 여보···

소리만 대여섯 번 달콤함은 사라지고

외국 출장 중인 남편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차 사고가 있었는데

지금 천만 원 안 주면 교도소로 이송된대

남편의 목소리는 차갑게 굳어 있었다

 

절망과 불안이 선 하나 사이에 오고 가고

바짝 타들어 가는 입술 사이로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고통이 심장까지 조여 왔다

 

계좌번호를 받아 적고

반 토막의 숨소리마저 수감되었을 때

빨래처럼 증발한 내 몸

 

남편에게 듣고픈 마지막 말

여보, 내 이름 한 번만 불러 줘

한 번만

침묵이 줄을 잇더니

씨발년

 

뚜뚜뚜…

귓속을 맴도는 신호음이 거짓의 옷을 벗고 있었다

 

―『절반은 사라지고』(도서출판 상상인, 2025) 

보이스피싱 _ 송영희 시인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보이스피싱을 조심합시다

 

  이 세상에는 다른 사람의 돈을 세 치 혀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 교도소에 보이스피싱에 관련된 죄를 지어 옥살이하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꽤 많을 것이다. 수용자 종합 문예지 계간 《새길》의 심사를 해보니 매번 1명 이상이 보이스피싱으로 돈을 갈취하다가 적발되어 형기를 사는 이들이 글을 보내 와서 알게 된 사실이다. 그러니 피해자는 얼마나 많을까? 돈도 적은 돈이 아니다. 그 돈은 피해자의, 그 집의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인데 교묘한 감언이설로 옴짝달싹 못 하게 해 편취한다.

 

  이 시는 쓴 분의 경험담일 것이다. 실감이 난다. 남편이 중국에 출장 간 것을 그들은 어떻게 알고선 전화를 한다. 문제는 남편과 목소리가 거의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혼이 나간다. 요즘엔 AI가 사기꾼들을 돕는다. 그들이 불러주는 계좌번호를 적고 반토막의 숨소리마저 수감되었을 때몸이 빨래처럼 증발하고 말았다니 얼마나 애가 탔을까. 그런데 그 순간에 어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여보, 내 이름 한 번만 불러 줘했더니 말을 못한다. 영희야! 송영희! 이름을 바로 못 댄 것은 그들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렇다고 욕을 하다니.

 

  경험담을 그대로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적 표현을 군데군데 하고 있다. 3연도 멋진 표현이지만 마지막 연이 화룡점정이다. 사실주의에 근거해 시를 쓰더라도 사실 보도에 그치면 안 된다. 바로 이런 고도의 시적 표현을 해야 성공작이 되는 것이다. 짜식들, 너희들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귓속을 맴도는 신호음이 거짓의 옷을 벗고 있었다같은 표현을 할 수 있겠어? 사기꾼 위에 시인이 있어.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야. 말로써 금을 빚어내. 그래도 우리는 교도소에 안 가. 사람을 현혹케 하는 것이 아니라 감동시키기 때문이지.

 

  [송영희 시인]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2015년 『문학의 강』 수필 등단.

2016년 『심상』 시 등단. 수필집 『내가 나에게 준 선물』 간행. 인터넷 브런치 작가.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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